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년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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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할머니는 석민이 학교 선생이 되기를 바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마음대로 수학여행도, 소풍도 갈 수 있었으니까. 석민은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 그리고 중학교1학년때 봄소풍으로 간 놀이공원을 마지막으로 더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었고 둘째는 알량한 자존심이었고 셋째는 할머니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은 석민의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풍이며, 수학여행에서 빠졌왔다. 어차피 그런것들 없어도 친구들은 있었고 그런데 가봤자 모든 것이 돈이었으니까. 할머니가 한사코 가라 했지만 석민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석민에게 있어 놀이공원은 그저 돈만 쓰는 정신이라곤 하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지금, 김민규와 함께다.
"너 괜찮아?"
"안 괜찮을건 뭐야."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렸음에도 김민규의 장난스런 표정이 드러났다. 멍하니 서있는 석민의 손을 잡아 끈 것도 김민규다. 빨리가자, 평일 저녁에 놀이공원에 갈줄이야. 야자 할거냐고 넌저시 물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롤러코스터를 타버린 석민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도 못한채였다. 꼭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표정봐"
"아, 멍해"
"우리 저거 타자"
"야아 어지러워"
"빨리!"
어지간히 놀고 싶었나보다. 그 후로도 김민규는 바쁘게 석민의 손을 잡아 끌었고, 석민은 그 뒤를 따랐다. 몇개를 더 타고나서야 김민규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섰다.
"바닐라 2개요"
"이것도 너가 사?"
"어 내가 마음대로 데리고 왔잖아."
슬며시 마스크를 벗으며 웃자 그 안에 맺혀있는 땀들이 보였다. 아르바이크생이 알아보는 눈치라 말을 시키려는 찰나에 김민규는 다시 석민을 잡아 끌었다. 결국 구석진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으 다 녹았어"
"휴지 줘?"
"있어?"
"아까 챙겼지."
휴지를 잡아든 김민규는 뭐가 좋은지 이젠 마스크를 다 벗고선 히이- 하고 웃는다. 어쩐지 귀여워 석민도 따라 웃었다.
"재밌지?"
"정신 없어"
"싫어?"
"아니"
김민규는 표정이 다양했다. 이 짧은 대화에서도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으니까.
"요 며칠 바빠보이더니"
"응 그저께 여기 행사 왔는데 너무 놀고 싶어서"
"안 혼나?"
"오늘 야자한다 했어."
"이미 야자할 시간 지났잖아"
"어 택시타고 가야지 아까부터 매니저형한테 전화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큭큭거리는 김민규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는 석민에게 손을 내민다.
"뭐"
"핸드폰"
"뭐하게"
"인증샷"
말없이 내밀자 자연스럽게 가져가고는 카메라를 켜는데 확실히, 연예인이라 사진발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옆에서 어쩐지 오징어가 되는 기분에 석민은 안찍는다 하였지만 꼭 같이 찍어야한다는 김민규의 성화에 결국 찍고야 말았다. 어색한 표정이 우스웠다.
"이거 나 카톡으로 보내줘"
"너걸로 찍지"
"휴대폰 키기 싫어서"
"많이 혼나는거 아니야?"
"괜찮아. 어제 1위했어 나."
"정말?"
"몰랐어?"
"어어, 축하해."
노래가 1위한다는 것이 석민에겐 얼마만큼의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으나 대단한 건 확실했다. 짝이면서 1위한것도 몰랐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뭐라도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덜 혼날거야."
"내일도 학교 와?"
"아니 내일은 못가"
입술을 비죽,내민 김민규가 성급하게 마스크를 썼다. 알아본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석민의 손을 잡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한 김민규의 손은 뜨거웠다. 겹쳐진 손으로 땀이 고여 석민은 빼고 싶었으나 김민규에겐 달리는 것이 우선인 모양이었다. 급한대로 택시를 잡아탔다.
"너 어디살아?"
"난 지하철 타도 되"
"에이 너네 집 거쳐서 가."
"아냐, 기사님 저 저기 역 앞에서 내려주세요."
집까지 가자는 김민규의 말에도 한사코 거절한 석민은 멀어지는 택시에 손을 흔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10시가 훌쩍 넘었다. 찬에게 언제 오냐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금방 들어간다 답장을 한 석민은 지하철로 발길을 돌렸다.
- 잘 가고 있지? 오늘 즐거웠음 ㅎㅎ
글자만으로도 신난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김민규의 연락에 석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뭘 탓는지,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나지만 확실한건 꽤 즐거웠다는 거다. 최근에 제일 크게 웃었다고 해야하나. 숙소에 도착했다는 김민규의 연락 이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민규의 답장을 한참이나 기다리던 석민은 잠이 들었다. 답장이 온 것은 새벽 4시 즈음이었다. 잠결에 손에 들린 핸드폰을 확인한 석민은 슬핏 웃곤 다시 잠이 들었다.
- 자? 나 매니저 형한테 쫌 혼나긴 했는데 그래도 잘 넘겼어!!
- 나 일주일은 학교 못갈듯
- 잠 안와 ㅠㅠ
- 자나보넹 ㅠㅠ 잘자
#김민규
이석민은 크게 다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답장은 곧잘 해주는 편이었다. 가령 수업시간이라던가 자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제게 장난을 잘 치는 한솔은 석민이 누구냐고 연신 물어왔으나 민규는 같은 반 친구라고만 대답할 뿐 그 이상 말을 해주진 않았다. 사실 마음같아서야 제가 좋아하는 앤데 얼굴은 잘생겼고, 공부는 안하는 거 같은데 수업시간에 질문받으면 대답도 잘하고 수학문제도 칠판에 척척 풀어내는, 똑똑한 애라고 말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표현은 잘 안하는거 같지만 자기한테 잘 대해주는 것 같다고. 사실 뭐 김민규에게 잘 안해주는 사람이 요즘에는 최한솔 말고는 없긴 하다.
"뭘 존나 쪼개"
"남이사"
"이석민이야?"
"아닌데"
"아니긴"
"이석민이 누구야? 사실 여자애 이름 저렇게 해놓은거 아니야?"
"내가 너냐"
장난치려는 최한솔의 등을 가볍게 발로 민 민규가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다. 아 빨리 좀 읽지. 가끔 답장이 느리다.
"지난번에 이석민이랑 놀이공원간거도 다 떴더만"
"그러니까"
"이석민은 안데?"
"아니 모르지. 걔 그런거 안해"
이석민은 보면 저 말고는 딱히 카톡하는 상대도 없었고 반에 친한애도 없었다. 뭐 고3 2학기에 전학와서그런지 애들은 공부하기 바빴고, 이석민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않았다. 이석민은 왜 갑자기 이사를 했을까. 이석민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아직 석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집에서는 뭐하는지,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은지. 길게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도통 시간이 나질 않는다. 아마 다음주 내내 학교 못갈텐데. 또 다음달은 해외에 간다. 아, 언제 만나. 이석민 보고 싶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석민에게 연락을 했다. 김민규 자존심도 없지. 시간되냐 물어 잠깐 짬을 내서 이석민 얼굴을 보기로 했다. 장소는 자정이 넘은 시간 연습실 근처. 이 늦은 시간에 나와주려나 하고 걱정도 했지만 어쩐지 이석민은 나와주었다. 게다가 손에 음료수까지 들고서.
"미안"
"아냐, 독서실에 있었어"
"공부?"
"으응,"
"너 대학 안간다며"
"그래도, 그냥."
이석민은 설핏 웃으며 말을 얼버무린다. 꼭 제대로 된 말을 해주지 않아 민규를 그럴때마다 애가 탓다. 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보통 친구 사이는 이러지 않을테니까.
"어제 너 나오는 라디오 들었어."
"진짜?"
"응, 너 벌칙받는거도 봄"
"아 안돼애"
푸스스, 웃는 얼굴이 좋아 민규는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늘인다. 한솔이 덩치도 큰게 애교부리면 밥맛이라 놀렸지만 자꾸만 몸이 베베 꼬이는 것은 다 이석민 때문이다.
"한솔이라는 애가 엄청 놀리더만"
"아주 나쁜놈이야. 맨날 나보고 못생겼다고 놀려"
"안못생겼어"
"그지?"
"응"
눈이 사라지게 웃으면 살짝 눈주름이 진다. 이 표정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 민규는 도저히 석민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너랑 있으니까 좋다."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민규는 그만 입을 합, 닫아버린다. 혹시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어쩌면 제 마음을 눈치채고 더럽다고 할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민규는 말을 채 이어나가지 못하곤 석민만 바라본다.
"저기 석민아, 그게"
"나도 좋은데 뭐"
"어?"
평온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에 민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석민만 빤히 바라본다. 손에 들린 캔은 이미 찬 기운을 잃은지 오래다. 뜨끈한 손바닥 열이 캔에 전달되어 미지근했다.
"나도 좋아서 여기 나오지. 아니면 내가 늦은 시간에 여기 있깄냐"
"어, 으응"
"얼른 들어가, 오래 자리 비우면 혼난다며."
"어, 석민아, 있잖아, 저기."
"응."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석민을 눈 앞에 두고 할말은 많은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전화, 할게."
"그래."
"저기, 있지"
"응"
답답할법한데 석민은 참을성있게 제 말을 기다려준다. 혹시 제 마음을 모르는건 아닐까.
"나, 이상해?"
".....아니"
"석민아."
"하나도, 하나도 안 이상해. 들어가. 늦었어."
"어어"
뭐지, 이거. 어쩐지 잘되가는 분위기에 헤어지기 전에 뽀뽀라도 받고 싶은 기분이다. 석민은 키스, 해봤을까.
"가, 얼른"
"으응"
"연락해."
슬쩍 손을 잡았다가 놔주는 손길에 민규는 그것조차 부끄러워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지금 얼굴, 되게 웃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터져나갈것 같다.
"잘가"
손을 흔들자 석민이 씩 웃는다. 민규도 석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좋아해도, 맞는거겠지.
+계속 써도 맞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