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에서 굿나잇까지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년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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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할머니는 석민이 학교 선생이 되기를 바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마음대로 수학여행도, 소풍도 갈 수 있었으니까. 석민은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 그리고 중학교1학년때 봄소풍으로 간 놀이공원을 마지막으로 더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었고 둘째는 알량한 자존심이었고 셋째는 할머니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은 석민의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풍이며, 수학여행에서 빠졌왔다. 어차피 그런것들 없어도 친구들은 있었고 그런데 가봤자 모든 것이 돈이었으니까. 할머니가 한사코 가라 했지만 석민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석민에게 있어 놀이공원은 그저 돈만 쓰는 정신이라곤 하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지금, 김민규와 함께다.

 

 

"너 괜찮아?"

"안 괜찮을건 뭐야."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렸음에도 김민규의 장난스런 표정이 드러났다. 멍하니 서있는 석민의 손을 잡아 끈 것도 김민규다. 빨리가자, 평일 저녁에 놀이공원에 갈줄이야. 야자 할거냐고 넌저시 물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롤러코스터를 타버린 석민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도 못한채였다. 꼭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표정봐"

"아, 멍해"

"우리 저거 타자"

"야아 어지러워"

"빨리!"

 

어지간히 놀고 싶었나보다. 그 후로도 김민규는 바쁘게 석민의 손을 잡아 끌었고, 석민은 그 뒤를 따랐다. 몇개를 더 타고나서야 김민규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섰다.

 

"바닐라 2개요"

"이것도 너가 사?"

"어 내가 마음대로 데리고 왔잖아."

 

슬며시 마스크를 벗으며 웃자 그 안에 맺혀있는 땀들이 보였다. 아르바이크생이 알아보는 눈치라 말을 시키려는 찰나에 김민규는 다시 석민을 잡아 끌었다. 결국 구석진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으 다 녹았어"

"휴지 줘?"

"있어?"

"아까 챙겼지."

 

휴지를 잡아든 김민규는 뭐가 좋은지 이젠 마스크를 다 벗고선 히이- 하고 웃는다. 어쩐지 귀여워 석민도 따라 웃었다.

 

"재밌지?"

"정신 없어"

"싫어?"

"아니"

 

김민규는 표정이 다양했다. 이 짧은 대화에서도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으니까.

 

"요 며칠 바빠보이더니"

"응 그저께 여기 행사 왔는데 너무 놀고 싶어서"

"안 혼나?"

"오늘 야자한다 했어."

"이미 야자할 시간 지났잖아"

"어 택시타고 가야지 아까부터 매니저형한테 전화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큭큭거리는 김민규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는 석민에게 손을 내민다.

 

"뭐"

"핸드폰"

"뭐하게"

"인증샷"

 

말없이 내밀자 자연스럽게 가져가고는 카메라를 켜는데 확실히, 연예인이라 사진발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옆에서 어쩐지 오징어가 되는 기분에 석민은 안찍는다 하였지만 꼭 같이 찍어야한다는 김민규의 성화에 결국 찍고야 말았다. 어색한 표정이 우스웠다.

 

"이거 나 카톡으로 보내줘"

"너걸로 찍지"

"휴대폰 키기 싫어서"

"많이 혼나는거 아니야?"

"괜찮아. 어제 1위했어 나."

"정말?"

"몰랐어?"

"어어, 축하해."

 

노래가 1위한다는 것이 석민에겐 얼마만큼의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으나 대단한 건 확실했다. 짝이면서 1위한것도 몰랐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뭐라도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덜 혼날거야."

"내일도 학교 와?"

"아니 내일은 못가"

 

입술을 비죽,내민 김민규가 성급하게 마스크를 썼다. 알아본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석민의 손을 잡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한 김민규의 손은 뜨거웠다. 겹쳐진 손으로 땀이 고여 석민은 빼고 싶었으나 김민규에겐 달리는 것이 우선인 모양이었다. 급한대로 택시를 잡아탔다.

 

"너 어디살아?"

"난 지하철 타도 되"

"에이 너네 집 거쳐서 가."

"아냐, 기사님 저 저기 역 앞에서 내려주세요."

 

집까지 가자는 김민규의 말에도 한사코 거절한 석민은 멀어지는 택시에 손을 흔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10시가 훌쩍 넘었다. 찬에게 언제 오냐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금방 들어간다 답장을 한 석민은 지하철로 발길을 돌렸다.

 

- 잘 가고 있지? 오늘 즐거웠음 ㅎㅎ

 

글자만으로도 신난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김민규의 연락에 석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뭘 탓는지,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나지만 확실한건 꽤 즐거웠다는 거다. 최근에 제일 크게 웃었다고 해야하나. 숙소에 도착했다는 김민규의 연락 이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민규의 답장을 한참이나 기다리던 석민은 잠이 들었다. 답장이 온 것은 새벽 4시 즈음이었다. 잠결에 손에 들린 핸드폰을 확인한 석민은 슬핏 웃곤 다시 잠이 들었다.

 

 

- 자? 나 매니저 형한테 쫌 혼나긴 했는데 그래도 잘 넘겼어!!

- 나 일주일은 학교 못갈듯

- 잠 안와 ㅠㅠ

- 자나보넹 ㅠㅠ 잘자

 

 

 

 

 

 

 

 

 

 

#김민규

 

 

 

 

이석민은 크게 다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답장은 곧잘 해주는 편이었다. 가령 수업시간이라던가 자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제게 장난을 잘 치는 한솔은 석민이 누구냐고 연신 물어왔으나 민규는 같은 반 친구라고만 대답할 뿐 그 이상 말을 해주진 않았다. 사실 마음같아서야 제가 좋아하는 앤데 얼굴은 잘생겼고,  공부는 안하는 거 같은데 수업시간에 질문받으면 대답도 잘하고 수학문제도 칠판에 척척 풀어내는, 똑똑한 애라고 말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표현은 잘 안하는거 같지만 자기한테 잘 대해주는 것 같다고. 사실 뭐 김민규에게 잘 안해주는 사람이 요즘에는 최한솔 말고는 없긴 하다.

 

 

"뭘 존나 쪼개"

"남이사"

"이석민이야?"

"아닌데"

"아니긴"

"이석민이 누구야? 사실 여자애 이름 저렇게 해놓은거 아니야?"

"내가 너냐"

 

장난치려는 최한솔의 등을 가볍게 발로 민 민규가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다. 아 빨리 좀 읽지. 가끔 답장이 느리다.

 

"지난번에 이석민이랑 놀이공원간거도 다 떴더만"

"그러니까"

"이석민은 안데?"

"아니 모르지. 걔 그런거 안해"

 

 

이석민은 보면 저 말고는 딱히 카톡하는 상대도 없었고 반에 친한애도 없었다. 뭐 고3 2학기에 전학와서그런지 애들은 공부하기 바빴고, 이석민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않았다. 이석민은 왜 갑자기 이사를 했을까. 이석민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아직 석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집에서는 뭐하는지,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은지. 길게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도통 시간이 나질 않는다. 아마 다음주 내내 학교 못갈텐데. 또 다음달은 해외에 간다. 아, 언제 만나. 이석민 보고 싶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석민에게 연락을 했다. 김민규 자존심도 없지. 시간되냐 물어 잠깐 짬을 내서 이석민 얼굴을 보기로 했다. 장소는 자정이 넘은 시간 연습실 근처. 이 늦은 시간에 나와주려나 하고 걱정도 했지만 어쩐지 이석민은 나와주었다. 게다가 손에 음료수까지 들고서.

 

 

"미안"

"아냐, 독서실에 있었어"

"공부?"

"으응,"

"너 대학 안간다며"

"그래도, 그냥."

 

이석민은 설핏 웃으며 말을 얼버무린다. 꼭 제대로 된 말을 해주지 않아 민규를 그럴때마다 애가 탓다. 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보통 친구 사이는 이러지 않을테니까.

 

 

"어제 너 나오는 라디오 들었어."

"진짜?"

"응, 너 벌칙받는거도 봄"

"아 안돼애"

 

 

푸스스, 웃는 얼굴이 좋아 민규는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늘인다. 한솔이 덩치도 큰게 애교부리면 밥맛이라 놀렸지만 자꾸만 몸이 베베 꼬이는 것은 다 이석민 때문이다.

 

 

"한솔이라는 애가 엄청 놀리더만"

"아주 나쁜놈이야. 맨날 나보고 못생겼다고 놀려"
"안못생겼어"

"그지?"

"응"

 

눈이 사라지게 웃으면 살짝 눈주름이 진다. 이 표정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 민규는 도저히 석민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너랑 있으니까 좋다."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민규는 그만 입을 합, 닫아버린다. 혹시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어쩌면 제 마음을 눈치채고 더럽다고 할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민규는 말을 채 이어나가지 못하곤 석민만 바라본다.

 

 

"저기 석민아, 그게"

"나도 좋은데 뭐"

"어?"

 

평온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에 민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석민만 빤히 바라본다. 손에 들린 캔은 이미 찬 기운을 잃은지 오래다. 뜨끈한 손바닥 열이 캔에 전달되어 미지근했다.

 

"나도 좋아서 여기 나오지. 아니면 내가 늦은 시간에 여기 있깄냐"

"어, 으응"

"얼른 들어가, 오래 자리 비우면 혼난다며."

"어, 석민아, 있잖아, 저기."

"응."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석민을 눈 앞에 두고 할말은 많은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전화, 할게."

"그래."

"저기, 있지"

"응"

 

답답할법한데 석민은 참을성있게 제 말을 기다려준다. 혹시 제 마음을 모르는건 아닐까.

 

"나, 이상해?"

".....아니"

"석민아."

"하나도, 하나도 안 이상해. 들어가. 늦었어."

"어어"

 

뭐지, 이거. 어쩐지 잘되가는 분위기에 헤어지기 전에 뽀뽀라도 받고 싶은 기분이다. 석민은 키스, 해봤을까.

 

"가, 얼른"

"으응"

"연락해."

 

슬쩍 손을 잡았다가 놔주는 손길에 민규는 그것조차 부끄러워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지금 얼굴, 되게 웃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터져나갈것 같다.

 

 

"잘가"

 

손을 흔들자 석민이 씩 웃는다. 민규도 석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좋아해도, 맞는거겠지.

 

 

 

 

 

 

 

 

 

 

 

+계속 써도 맞는 거겠지..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년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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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민

 

 

 

 

 

 

 

1학기 기말고사가 한창일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연히 시험은 손에 잡힐리 없었고 점수는 형편이 없었다. 그러나 석민에게 있어서 망쳐버린 점수보다 심란했던 것은 다섯살무렵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쭈욱 살았던 집을 떠나 고모의 집으로 옮긴다는 사실이었다. 석민은 고모라는 사람이 단란주점을 경영하고 있는 마담으로 홀로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며, 할머니와 연락을 끊은지 한참 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석민이 외갓댁 대신 고모네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선택지가 고모 하나뿐이기도 했거니와 돈 한푼 없는 자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석민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고모에겐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저보다 두살이 어렸다. 키도 작달만했지만 야무져보이는 것이 고모를 똑 닮은 얼굴이었다. 화장이 짙은 얼굴을 한 고모는 찬이가 외로움을 타는데 잘 부탁한다고 웃었다. 어쩐지 힘겨워보이는 얼굴이라 석민은 싱긋, 웃었다.

 

 

석민은 살가운 성격이긴 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어쩌면 이 표현이 모순적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이 그랬다. 처음엔 낯을 잔뜩 가리지만 친해지면 그렇게 살가울 수 없는 것이 제 성격이었다. 때문에 첫인상이 날카롭다는 평을 많이 듣기도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석민은 서울에서 시작된 3학년 2학기 생활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3학년 2학기에 전학을 오고 가는 이도 드물었고, 애들은 수능때문에 전학생에게 관심을 갖지도 않을터였다. 석민은 제 친구들이 그리웠다. 고모에게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볼까하는 의견을 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헛소리말라는 호탕한 웃음과 등짝 스매쉬였다. 찬이와 같은 교복을 입고 대문을 나온 석민은 한숨부터 나왔다.

 

 

"걱정돼?"

"조금?"

 

 

방학이 시작되었던 7월중순부터 찬과 함께 살아 이제사 석민은 조금 말을 트기 시작했다. 찬은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꽤 잘 큰 아이인것 같았다. 엄마 생각할줄도 알았고 제법 공부도 열심히 하는 편 같았다.

 

 

"있지, 석민이 형"

"응"

"엄마가 전학 첫날 같이 못가줘서 미안하데."

"애도 아니고 뭘."

 

 

오랜세월동안 저를 본 적도 없으면서 마음써주는 고모가 석민은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술집마담인 고모가 전학 첫날 같이 가주지 않아 다행이라는 나쁜 마음까지 들었다. 스스로 부끄럽긴 했지만, 솔직한 마음이었다.

 

 

"왕따당하는거 아니야?"

"그러면 놀러와 나 1학년 4반이야 형"

 

장난스레 웃는 찬의 얼굴에 석민도 슬쩍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예상대로 애들은 전학생에 큰 관심이 없었고 석민은 그것이 되려 안심이 되었다. 옆자리가 빈 책상을 보며 이것 역시 잘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어쩐지 조금, 외로웠다.

 

전 학교에서 석민은 꽤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었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흐름이 끊겨버렸다. 공부에 손도 잡히지 않았을 뿐더러 할머니가 돌아가신 순간 대학의 꿈도 접고 싶었다. 할머니가 원하던 선생님이 되면 뭐하나싶기도 했고 모든 것이 귀찮았다. 종이 칠 무렵 아무 생각 없이 교과서를 보던 석민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뜬건 제 어깨를 흔드는 손길이었다.

 

 

"전학왔어?"

"....누구"

"나 너 짝이야"

 

 

덧니를 드러내며 제 짝이라고 소개한 녀석은 잠이 덜 깬 석민에게 탄산음료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석민은 고맙다고 중얼거리며 음료를 만지작 거렸다. 이걸 그대로 따면 제 얼굴에 펑하고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기도 했다.

 

 

"언제왔어?"

"아까 아침에"

"나 지난학기에 계속 짝 없었는데. 완전 잘됐네. 어디서 왔어?"

"경기도에서"

"경기도 어디?"

"용인"

"근데 갑자기 왜 온거야? 보통 3학년 2학기에 잘 안오잖아"

"이사 오게 되서"

"오 그렇고만. 이번교시 뭐야?"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통에 석민은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석민이 수학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수학이네 수학! 하며 소란스레 교과서를 꺼내는 것이었다.

 

 

 

 

 

 

"김민규씨 얼굴 간만에 보네요"

"아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이번 학기엔 출석 좀 많이 합시다"

"헤에 네에 죄송합니다아!"

 

 

김민규, 제 옆에 앉은 녀석의 이름이었다. 짝이라고만 했지, 이름 석자 묻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석민은 흘긋 곁눈질로 김민규를 살펴보았다. 밝은 갈색머리에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 연예인인가 싶기도 했다. 출석 많이 하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돌이려나. 키도 큰 것 같아서 모델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보통 연예인이면 막 이렇게 먼저 아는 체 안하지 않나?

 

 

"뭘 그렇게 봐"

"어?"

"내 얼굴 뚫어지겠다"

 

 

키득거리며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석민의 귓가가 훅 붉어졌다. 미안, 하고는 석민은 그 시간이 끝날때까지 교과서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물론 내용은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쉬는시간이 되자 제 자리를 온통 여자애들로 가득찼다. 물론 관심 타깃은 제가 아니라 김민규였다. 석민은 어째서 김민규에게 지난학기 내내 짝이 없었는지 알것도 같았다. 곱게 화장을 한 여자애들이 쏟아내는 질문과 김민규가 하나하나 다정하게 대답해주는 질문으로 추론하였을 때 김민규는 아이돌인 것 같았다. 어쩐지 너무 잘생겼더라.

 

 

"정신 없었지? 미안"

"별로, 괜찮아"

 

잘생긴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니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친근한 얼굴을 한 제 친구들이 그리웠다. 석민은 괜히 어색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고, 이어서 나오는 김민규의 말에 벙찌고야 말았다.

 

 

"어?"

"나 핸드폰 번호좀"

"...내꺼?"

"이런 니꺼지 누구꺼야."

"왜?"

"와 존나 서운하게. 짝이니까 알려달라는거지. 우리 졸업할때까지 짝이야. 번호 달라 소리도 못하냐?"

 

 

보통, 뭐 좀 유명하고 그러면 자기 번호 잘 안알려주고 그러지 않나? 석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건내받은 핸드폰에 제 번호를 저장했다.

 

 

"너 이름 뭐지?"

"이.."

"이석민. 여기 이름표 있네. 이석민. 맞지?"

 

 

뭐가 그렇게 신이 난건지. 씩 웃으며 발을 동동구르는데, 석민은 순간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장난스레 대꾸했다.

 

"이름도 모르고 번호부터 묻냐 넌?"

"그럴수도 있지이. 서운했어?"

"아니 뭐, 그냥"

 

잘생긴 얼굴을 들이밀자 다시 어쩐지 부담스러워진다. 김민규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이제 이름 안다고 제 이름을 불렀다. 

 

 

"김민규, 나도 알아 네 이름."

 

 

제 말에 헤헤, 하고 김민규가 웃었다.

 

 

 

 

 

 

 

# 김민규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한솔의 질문에 민규는 비밀이라며 핸드폰을 보며 키득거렸다. 이석민과 별 되지도 않는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고 김민규는 어쩐지 마음 한켠이 간지르르한 기분이 들었다.

 

 

"연애하냐"

"아니거든요"

"지금 누구랑 카톡하는데"

"아 친구"

"친구 누구"

"아 있어 학교친구"

"여자?"

"남자거든요. 봐라 봐. 이석민"

 

 

떳떳하게 핸드폰을 한솔의 코 앞에 내밀자 이내 표정엔 재미없다는 글자가 보이는 듯 하다. 그도 그럴것이 대화 내용은 내일 학교 못간다는 것이었고 김민규만 잔뜩 신이 나있는 것이다.

 

 

- 내일 학교 왜 못 와?

- 방송있어서

- 무슨 방송?

- 음악방송

- 오래 해?

- ㅇㅇ 아침에 갔다가 하루종일 있음

- 피곤하겠네.

- 웅 ㅜㅜ

- 잘다녀와

 

이게 다야? 어쩐지 대화가 곧 끊겨버릴것 같아 민규는 어쩐지 우울해진다. 여자애들은 대화도 잘 이어가주는데 이석민은 자꾸만 대화를 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혹시 제가 귀찮은걸까. 하긴 제가 처음 번호를 물을때도 좀 놀란 표정이었다. 아, 좀 있어보이는 척 해야하는데 너무 들이댄건가 싶기도 했다. 본심이야 정말 마음에 들기도 했고 생긴것도 제 취향인 탓이지만 어느정도는 한학기동안 짝 없이 외롭게 있던 탓에 같은 반 친구를 사귀고 싶기도 했다. 본심이 더 크긴했지만. 제 정체성을 깨달은건 중학교 즈음이었지만 적당히 선을 그으며 친구로 지낸 탓에 나름 처신을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번에도 적당히 친구로 지내면서 오른손 반찬정도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무뚝뚝해 보여도 제 말에 다 대꾸해주는 것이 괜찮은 애 같기도 했다. 석민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던 민규는 결국 마음먹은 표정을 하고는 통화버튼을 누른다. 방에 아무도 없으니까 해도 되겠지 뭐.

 

-여보세요?

 

약간 잠긴 듯한 낮은 목소리에 민규는 어쩐지 마음이 설렌다. 얘는 목소리도 멋있냐.

 

"어, 나, 김민균데, 뭐해?"

- 어 그냥 있지.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그냥 했는데"

-뭐야

 

피식 웃는 목소리에 민규는 자꾸만 입술을 깨문다. 아 좋아서 죽을거 같다.

 

"뭐하고 있었어?"

- 그냥 있었지, 너는?

"나도. 연습끝나고 씻고 누웠지"

- 아, 내일 방송하는거?

"응, 너 나 어디 그룹인지 알아?"

- 어 검색했어 너 인기 많더라

"정말?"

 

 

제 이름하나 검색해준게 그렇게도 기분이 좋을까. 어쩌면 이석민도 제게 관심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민규의 심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사진 잘나온것만 봐줬으면 좋겠는데, 과거 사진 같은거 말고.

 

 

- 노래도 들었어

"우와 진짜?"

- 넌 왜 이렇게 파트가 별로 없어

" 랩퍼니까 그렇지이"

 

 

장난 섞인 말투에 투정을 부리지만 싫지가 않다. 민규는 어쩐지 자꾸만 몸이 베베 꼬여 다리로 이불을 둥둥 감아본다.

 

 

"그래도 나 실물이 낫지?"

- 아니

"야 너 진짜 그럴래?"

- 장난이야, 장난. 화장안한게 나은거 같아 나는.

"진짜?, 맨날 화장하니까 여자처럼 나도 생얼로 가면 괜히 좀 그런데"

- 월요일날은 화장한거야?

"아니 생얼"

- 괜찮은데 왜

 

 

온 몸이 녹아내릴거 같다는 표현은 정말 이럴때쓰는게 아닐까. 민규는 귓가에 박히는 석민의 목소리에 설레서 어느새 엄지까지 잘근잘근 씹어댄다. 얘는 진짜 뭐하는 애지? 마지막까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잘 하고 오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김민규는 오늘 잠은 다 잔거 같았다.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져버리는건 아닐까. 이석민도 혹시 알까. 아니 몰라줬으면 좋겠다. 그냥 좋은 친구로,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면 됐다.

 

 

 

 

 

 

 

 

 

 

+존나 마음 간지르르한 청게 겸규가 보고 싶었다...

더 이어 쓰고 싶긴 한데. 쓸수있을까

 

 

 

 

 

 

 

 

 

 

 

겸규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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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 너야.

울음을 참으려는듯한 잔뜩 누른 목소리가 생생했다.

숨을 몰아내쉴 때마다 입술에서 나오는 뽀얀 김, 그리고 발개진 코끝과 말아쥔 주먹.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내 꿈은 늘 여기서 끝난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울리는 전화는 뻔했다. 술취한 김민규거나 술취해 우는 김민규를 데리고 있는 최한솔.

나는 대충 츄리닝을 껴입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새벽임에도 열대야인탓에 밤은 여전히 무더웠고 자연스레 최한솔이 사는 빌라를 목적지로 찍어버린 내 이마엔 땀이 맺혔다.

에어컨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을 정도로 난 마음이 급했다.

 

 

최한솔은 짜증이 약간 섞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도 그럴것이 최한솔은 내일 촬영이 있어 아침일찍 공항에 가야했고 그런 최한솔의 집을 새벽 한시에 찾아온 것이 김민규였다.

미친새끼. 내가 찌질하게 구남친 집 찾아가지 말라고 그렇게 누누이 말했건만.

 

 

아, 최한솔은 김민규이 만났던 남자들 중 유일하게 멀쩡한 놈이다.

김민규가 군대가기 전에 헤어졌는데 김민규는 삼사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종 최한솔을 찾았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최한솔은 나를 찾았고.

아, 나는 김민규의 남친은 아닌가? 아, 남자인 친구는 맞다. 최한솔과 완전 다른 의미로.

 

 

 

 

"미안해요, 한솔씨"

"아니에요 스케줄만 아니면 재워서 보낼텐데."

"문도 열어주지 말지."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최한솔은 역시 진국인 놈이다.

이런 진국인 놈을 김민규는 뻥 차버렸다.

그리고 술만 쳐먹으면 찾는다. 아, 다시 생각해도 김민규는 병신같다.

 

 

 

 

 

 

 

 

 

 

야 이석민 나 라면좀.

남의 집에서 열한시까지 퍼질러 자고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딱 저거다.

 

 

 

"너가 끓여먹어 병신아"

"제발, 나 죽을거 같아"

"죽어 그냥"

"제발요 석민님"

 

 

 

사실 어쩌면 제일 병신은 나다.

난 결국 김민규에게 라면을, 끓여줬다.

 

 

 

 

 

 

"그래서 어제 최한솔은 왜 찾아갔어"

"몰라"

"차였냐?"

"차이긴 누가 차였다그래!"

"미친새끼야 다 쳐먹고 말해 다 튀잖아!"

 

 

더러운새끼. 김민규 화보보면서 멋있다 잘생겼다 하는 여자들은 이새끼 이렇게 병신인거 알고 있을까.

결국 난 입가에 라면이며 김칫국물을 다 묻힌 김민규의 주댕이를 닦아줬다. 김민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시력보호차원에서.

이번엔 웬일로 6개월 넘게 만나는가 싶다 하더니만 김민규의 스무번째 연애는 어제로 끝이나버렸다.

잘나가시는 아이돌 남친께서 아시아 투어 콘서트를 다니시는 동안 소원해지면서 싸우다가 결국 끝냈단다. 잘한다.

 

 

 

"호텔방에 와이파이 터질텐데 카톡하나 못남겨주냐구"

"바쁜가보지"

"야 솔직히 카톡할 시간은 있잖아"

"....그건 그렇지"

 

 

 

내 대답에 김민규는 시무룩한 얼굴로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넣는다.

저새끼는 모델하는새끼가 너무 쳐먹는다.

 

 

 

"너 일 안하냐"

"아니 이따 또 가"

"몸매관리 안해?"

"짠"

 

 

자랑스레 배를 까는 녀석의 배엔 식스팩이 어여쁘게도 잡혀있다. 얄미운새끼.

 

 

 

 

"석민아"

"어"

"나한테 연락하는 애 있는데 걔랑 만날까?"

"너 어제 헤어졌잖아"

"외로워"

"미친놈"

 

 

 

 

열아홉살 김민규가 내 앞에서 커밍아웃을 한 지 7년. 그동안 김민규는 스무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제대로 된 연애는 최한솔이 전부였다. 아니 그것도 제대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한살한살 쳐먹어 가는데도 김민규의 연애관은 아직 어리고 한참 어리다. 신나게 새로운 놈과 카톡을 하는 김민규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하다가 나는 결국 김민규가 먹던 냄비를 치우기 시작했다. 김민규에 대한 연민이, 자꾸만 나를 이렇게 병신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툭하면 나를 찾아대는 김민규지만 사실 김민규는 바쁜 몸이다. 주중에 한번 라디오 스케줄을 하고 공중파 음악방송 엠씨도 맡고 있으며 케이블에서 패션 프로그램 진행도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틈틈이 화보도 찍고 씨에프도 찍는다.  그러다보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거 같은데, 그 와중에 연애도 하고 술쳐먹고 나한테 주정도 한다. 부지런한 새끼.

 

 

 

오늘도 김민규는 어김없이 나를 찾았다. 이유는 새로 사귄 남친 자랑. 아무래도 남자-남자다보니 누구한테 자랑할 기회가 없다. 거기다가 직업도 연예인이고 하다보니 더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 학교 다닐 적에 아웃팅당한 적이 있어 상처도 받은 탓에 김민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게이로 성장했다.

 

 

 

"짠 걔가 사줬다"

"이쁘네"

"영혼 존나 없다 너"

"아 그러면 뭐 와 씨발 존나 이뻐요 이러면서 호들갑 떨어주랴?"

"어 그렇게 해줘"

"꺼져"

 

 

가볍게 가운데손가락을 들어 날려주곤 티비채널을 돌렸다. 티비엔 최한솔이 나왔다.

 

 

 

"야 너 최한솔한테 사과했어?"

"내가 왜"

"너번에 찾아갔잖아"

"한두번이냐"

"야 너 이제 진짜 조심해"

"뭐가"

"쟤도 생각해줘야지"

"내가 뭘"

"암튼 최한솔 찾지마"

"그냥 나한테 연락해."

"......진짜?"

"어"

 

 

 

김민규는 한동안 말이 없다.

 

 

 

 

 

 

 

 

 

김민규가 나를 의지한 건 내게 커밍아웃을 한 며칠 후 바로 아웃팅 당해버린 것이 계기가 되버렸다.

나한테 말하는 걸 누군가 들었던건지 몰라도 그날 아침, 칠판엔 김민규를 향한 욕이 잔뜩 써있었고 책상엔 쓰레기며 잡다한 것들이 다 있었다.

아마 그때 김민규와 같은 반이 아니었거나, 다른 학교였다면 상처 잘받는 김민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몰랐다.

싸음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던 내가 그날 주먹좀 쓴다는 양아치새끼한테 개털리면서 김민규를 '궁둥이가 가벼운 호모새끼'라는 부르는 녀석들에게 불만을 표하지 않았더라면 김민규는 나에게 이렇게 의지하지도 않았겠지. 그 덕에 나 역시 한두달 간 호모새끼로 낙인찍혔지만 나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그 소문은 일단락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니까 나 존나 김민규 은인이네.

 

 

 

 

"석민아"

"어"

"넌 나 안귀찮아?"
"조올라 귀찮지"

"개새끼야"
"조올라 귀찮은데 어떻게 할거야. 내 업보인걸."

"죽을래?"

 

 

길 발을 뻗어 내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집어차는 김민규의 얼굴엔 걱정이 쓰여있다.

녀석은 가끔씩 농담을 농담처럼 웃어넘기지 못했다.

평소에나 좀 그럴 것이지 가끔씩 지나치게 내 눈치를 보는 거다.

그리고 난 그것이 몹시 불편했다. 이제와서 왜? 이런 느낌이랄까.

 

 

 

"야"

"왜"

"최한솔 말고 나한테 연락해 어?"

"진짜?"

"아니면 니 남친한테 연락하던가"

"너한테 할래"

"니 맘대로 해라"

 

 

 

 

사실은 김민규가 지금 만나는 애보다 나에게 의지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닌가, 맞나.

모르겠다. 괜히 짜증이 차올라 가만있는 김민규의 등짝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3

 

 

 

 

 

 

 

김민규의 새로운 남친은 신인모델로 내가 보기엔 하나도 멋있는 구석이라고는 없는 놈이었다.

들어보니 돈 좀 있는 거 같은데,  그것말고는 영 눈에 차질 않는다. 생긴건 놈팽이 같이 생겨쳐먹은게 김민규는 자세히 말 안하는 거 같지만 그렇게 애틋해보이지는 않는다. 내 촉으로 볼거 같으면 김민규를 이용해 먹는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오늘 내 촉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왔다.

지난주에 김민규가 놈팽이랑 찍은 사진을 강제로 몇십장이나 보여준게 화근이었다.

사진발이 존나 심하긴 하지만 실제로 봐도 그놈이 이놈인걸 알 수 있을정도니까.

 

하여간 이놈은 내가 김민규 친구라는건 꿈에도 모른 채 내 까페에서 여자를 껴안고 물고 빨고 별 지랄은 다 떨어댄다.

호기심에 김민규랑 사귀고나서 여자가 좋다고 가버린 놈들이야 종종 있어서 사실 여기까진 봐주려고 했다.

 

 

김민규 잘나가는데, 걔 게이인거 아는 사람 은근 없더라? 이번에 그냥 확 보내버리려고. 나도 이참에 뜨는거지. 김민규 애인이라고 하면 네이버에 실시간 검색 오르고 그럴거 아니야. 걔 존나 웃긴거 아냐. 좀만 좋은척 해줘도 좋아 죽어. 오늘 이따가 따먹고 동영상 하나 찍을라고. 뒤로 하는게 그게 존나 좋다더라.

 

 

 

나는 태어나서 두번째로 누군가를 쳐버렸다. 싸움이라고는 영 젬병인데. 이게 모두 다 김민규 탓이다. 놈팽이 새끼는 뭔 운동을 했는지 몰라고 맷집도 존나 좋았고 아마,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난 정말 병원에 실려갔을지도 모르겠다. 주먹에 얻어맞아 눈 앞에 팡팡 터짐에도 나는 김민규의 우는 얼굴이 떠올랐다. 김민규가 우는건, 존나 보기 싫었다.

 

 

 

 

 

 

김민규가 경찰서로 달려왔다. 그 개새끼는 나를 존나 패놓고 맞은 곳이 아파 뒤지겠다며 신고를 했고 우린 둘다 쌍방폭행으로 나란히 지구대로 갔다가 경찰서까지 흘러들어갔다. 김민규는 몰랐으면 싶었지만 알바생 녀석이 말한건지 몰라도 김민규는 잽싸게 경찰서로 튀어왔다. 모델이란 새끼가 폼좀 잡지 뒷 머리는 다 들떠서 슬리퍼도 짝짝이로 신고말이다.

 

 

그리고 그새끼 붙잡고 뭐라고 한참을 말하더니 무섭게 생긴 형사아저씨가 나한테 와서 합의 할거냐고 묻는다. 뒤에서 걸어온 김민규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차피 돈 많은 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나는 아빠가 차려준 까페 사장이었고 까짓거 벌금 좀 내도 인생 불편한 건 없었다. 대신 아빠한테 존나 혼나겠지만. 그러나 그 녀석은 어떤가. 김민규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모델놈인데 폭행으로 벌금 쳐먹으면 이미지 타격도 크겠지 싶어 나는 끝까지 사건처리 할거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김민규가 내 입을 틀어막고는 합의할거라고 존나 큰목소리로 떠들어댔다. 형사아저씨는 다시 내 의사를 물었지만 울기 일보직전인 얼굴을 한 김민규 덕분에, 나는 결국 알겠다고 했다.

 

 

난 김민규 우는 얼굴이 존나 싫었다.

 

 

 

 

 

 

 

 

 

 

"왜 싸웠는지 말 안해줄거야?"

"그새끼가 말 안해?"

"어 말 안해줘.

"그럼 나도 말 안해"

 

 

 

 

 

병신새끼. 김민규는 예전부터 거짓말은 존나 못했다. 분명 그새끼는 김민규 앞에서 별 거지같은 말들을 나불댔을거고 김민규는 그 까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속으로 상처랑 상처는 다 받았을테다. 그 새끼가 얼마나 좆같은 새낀지 말해주고 싶었지만 김민규가 상처받는 말같은건 굳이 해주고 싶지 않았다. 김민규는 스물한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수도 없이 상처를 받았고, 아물지 못한 상태로 그 위에 계속 상처가 생겨 흉터가 있었다. 그리고 난 그때마다 고작 밴드만 붙어주는 놈이었고.

 

 

 

"왜 맞구 살아 병신아"

"지랄, 누구때문인데."

 

 

 

집에와서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댄 나는 담배부터 입에 물었다. 김민규가 옆에서 계속 끊으라는 통에 줄이긴 했지만 스트레스사 치솟을때마다 이만한 것이 없었고 오늘은 담배가 더욱 절실했다.

 

 

 

 

"냄새나"

"내집이야"

"이석민 나한테 정말 말 안해?"

"뭘 말해"

"왜 싸웠냐고"

"그걸 뭘 말해, 내 일이야. 넌 올 필요도 없었고"

"나 때문에 싸운거라며"

 

 

 

물기가 가득한, 울음을 억누른 김민규의 목소리의 원인은 늘 다른 남자때문이었지 나 때문이었던적은 예전에 단 한번 뿐이었다.

김민규가 우는 것도 싫지만 그게 나 때문인건 더 싫다.

 

 

 

 

"나 피곤해 너 가라"

"야 이석민"

"뭐"

"말 하라고"
"뭘 말해"

"왜 싸웠-"

"그 새끼가 씨발 너 등을 존나 쳐드시겠다는데 그럼 내가 참아! 넌 왜 하나같이 다 그런 좆같은 새끼들만 만나냐? 어? 너 오늘 내가 그 얘기 안들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넌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왜 맨날 하나같이 그런 쓰레기들만 만나냐고!!"

 

 

 

 

그간 김민규에게 미친새끼, 병신새끼같은 소리는 했다만 단 한번도 소리를 친적은 없다. 어릴적 엄마로부터 학대를 받고 자랐던 탓에 꽥 지를 소리를 무서워 한 탓도 있었고, 굳이 상처많은 놈에게 상처를 얹어줄 필요는 없다고 느꼈으니까. 김민규의 눈에 괴어있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너랑, 닮았으니까"

 

 

 

 

울음을 누르고 눌러서, 참아낸 말을 내뱉은 김민규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기위에 결국 입술을 꾹 깨물었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열아홉살 김민규가 나를 좋아하고 고백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다시 친구로 지내자고 용기내어 말한 날 김민규는 나에 대한 마음을 접었을거라 생각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니겠지.

 

 

 

 

"너가, 너가 나랑 안만나주니까. 너랑 비슷한 사람만 자꾸 찾게 되는데. 어떻게 하라고!! 너가 나 만나주지도 않을거잖아"

 

 

 

본격적으로 엉엉 울기 시작하는 애를 달래줘야하는데 머릿속도, 입도, 모든 것이 맘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결국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뻣뻣하게 김민규에게 다가가 품에 김민규를 안아왔다.

키만 컷지 홀쭉한 녀석은 생각보다 더 자연스레 내 품에 들어왔다. 녀석의 등을 쓸어내리며 나는 나도 모르게 멋대로 지껄였다.

 

 

 

"만나, 만나자. 나랑 만나자 김민규"

 

 

 

 

이 말 한마디에 눈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고선 맹하게 나를 바라보는 김민규의 얼굴이 예뻐보여 나도 모르게 입을 맞추었다.

남자 스물한명 만난 놈치곤 김민규의 키스실력은  아주 형편이 없어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의식의흐름대로써버린 나의 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