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전력] 칠성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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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쉰다 생각하고 다녀와.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에 순영은 착찹한 듯 뿌우연 담배연기를 내뱉고 고개를 꾸벅 숙여 돌아섰다.
잠깐 쉬기는, 영원히 버릴거면서.
눈발이 휘날리는 3월, 기차 안은 추웠고.
덜컹 거리며 깊은 곳 까지 들어간 버스 안도 몹시 추웠다.
칠 성 슈 퍼
제 11회 영원전력 '귀여워'
1.
조직이 분리가 되며 내분이 일어났고, 순영이 행동대장으로 있던 곳은 고스란히 와해되었다.
제 목숨하나 붙어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될 만큼.
나중에 쓸일이 있어서 그런건지, 죽일 타이밍을 놓친건지 몰라도 순영은 처음 들어본 지방의 한 항구 도시로 쫒겨났다.
강남 노른자땅에 자리한 고급 술집을 관리하던 순영으로썬 항구에 자리한 집창촌 관리직이 어이가 없었으나 밥이라도 벌어먹고 사려면 어쩔 수 없었다.
목숨이 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을 땐 죽는거 하나도 안무서웠는데.
서른이 훌쩍 넘어버리니 죽는게 무섭다.
사실은,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 죽는걸 더 무서워하는 자신이 무서워졌다.
"오빠,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어제 누구랑 놀았어?"
오후 네시, 술이 덜 깬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간 순영의 주위로 어린 얼굴을 한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까지 이 안에 갇혀 있던 그들에겐 외지에서 온 순영은 흥미의 대상이었다.
귀찮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 순영은 그들의 말을 어느정도 받아주는 편이었고, 그래서 순영은 늘 출근길에 부탁받은 담배며 군것질 거리들을 양손 가득 들고오곤 했다.
"오빠 피곤하다, 이거 받고 딴데 가서 놀아"
"어, 오빠 근데 여기 가게 잘 가네?"
"어디"
"오빠 맨날 여기서 사오잖아"
칠성슈퍼. 버얼건 봉투위에 새겨진 글자에 순영은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어때서냐는 표정이었다.
순영의 순진한 표정에 여자들은 주변에서 까르르 웃었다.
"오빠 그런 취향이야?"
"뭐가"
"남자 좋아하냐고"
"뭐래"
자꾸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하는 여자들이 귀찮아진 순영이 손을 훼훼 젖곤 자리에 일어난다.
등 뒤로, 한 마디가 또렷하게 들린다.
가게 일 보는 남자애 있잖아, 걔 남자들한테 뒤 대준다더라고.
2.
천 삼백원이요.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음료수 가격을 말하는 남자는 확실히, 남자치고 색기는 있었다.
그렇지만 허름한 반팔티에 대충 걸친 남방에 촌스러운 안경하며.
아무리 봐도 화대를 받아 먹고 살만하게 생기진 않았는데.
"...왜, 그러세요?"
"아, 아니. 담배 한갑 줘요"
너무 빤히 바라봤나. 순영은 뻘쭘한 마음에 시선을 돌려 담배 한갑을 추가로 계산했다.
슬쩍 내리깐 속눈썹이 확실히 길었다.
3.
감사합니다.
덜덜 떨고 있는 주제에 제 할말은 다 했다.
순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제 점퍼를 어깨에 둘러주었다.
오후 11시즈음 손님을 받지 않은 애들이 하도 입이 심심하다길래 주전부리좀 사다줄 참이었다.
놀림을 받은 이후 다른 슈퍼를 갈까 했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고 안가는 것도 우스워 순영의 발길은 칠성슈퍼로 향했다.
보통 새벽 1시까지는 불을 켜놓는 슈퍼는 컴컴했고, 문도 열려있었다.
바스럭거리는소리, 미약하게 저항하는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냥 갈까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한 순영이 초콜릿을 손에 들고는 가게 안에 자리한 문을 열었다.
"아저씨, 이거 계산 좀 해주세요"
남자 위에 올라타 헉헉 대는 남자를 발로 집어 차는 정도는 순영에겐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위에는 죄다 벗겨져 드러난 하얀 살결 위엔 버얼걸 손자국이 가득했다.
멍청해보이는 안경은 바닥에 굴러져 있었고.
"안경 왜 써요"
"...잘, 안보여서요"
"안 쓰는게 더 예쁜데"
아, 내가 뭔 소리를.
순영은 예쁘다 한마디에 저를 빤히 바라보는 슈퍼 주인을 향해 멋적게 웃어보인다.
"안경 안 쓴게 더 낫다고"
"....감사합니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꾸벅 숙인 남자는 손을 뻗어 제 옷가지들을 챙긴다.
몸을 숙일때 척주뼈가 도드라졌다. 마음이 이상했다.
"괜찮아요?"
"...네에, 뭐"
"아니면 내가 장사하는데 방해된거 아니죠?"
이놈의 입이 또. 순영은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짓는 남자를 보곤 빠르게 후회했지만 이미 말은 내뱉어진 뒤였다.
그러나 남자는 그 말이 익숙한 듯 다시 옷을 꿰어 입고는 순영의 점퍼를 건내준다.
"그런 장사, 안해요"
"....아, 그러니까"
"이 동네에서 살아가려고 그냥, 참는거죠"
언뜻,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았다.
말문이 턱 막힌 순영은 점퍼를 받아 들고는 주인을 바라보았다.
"담배, 피워요?"
4.
순영에겐 담배 친구가 생겼다.
일하기 전이나 일을 하면서도 순영은 가끔 칠성슈퍼로 와서 원우와 담배를 피우곤 했다.
"순영씨는 원래 여기 사람 아니죠?"
"뭐, 그죠"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
서울. 그곳을 생각하면 순영은 마음이 착잡했다.
그곳엔 10년 가까이 같이 지낸 친구며 동생 녀석들도 많았고 멀리서 지켜 볼 뿐이지만 일단 보통의 삶을 사는 여동생도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과연 돌아가서 잘 살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곳이 서울이었다.
"사장님은"
"저도 고등학교까지 서울쪽 있다가 왔어요"
"여긴 왜?"
"엄마가, 여깄으니까"
"어머니랑 슈퍼 둘이 하는거에요?"
"아뇨, 지금은 혼자"
설핏 웃는 원우의 뒤로 바닷바람이 스쳤다.
어쩐지 그 모습이 지독하게 외로워보여 순영은 저도 모르게 원우의 뒷통수를 쓸어내렸다.
"뭐에요"
"귀여워서"
"뭐야 그게."
이런 스킨쉽이 익숙치 않은 듯 원우가 입을 비죽대며 한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사실 귀엽기 보다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인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 정말 귀엽게 느껴진다.
"진짜 귀여워서 그러지"
"됐어요"
하얀 귀가 발갛게 물들었다.
순영은 정말, 원우가 귀엽다고 생각이 들었다.
5.
원우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나이가 동갑이라는 정도와 귀엽다는 말을 하면 정말 귀엽게 귓가를 붉힌다는 정도.
칠성슈퍼에 순영이 자주 드나들자 둘이 붙어먹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순영은 개의치 않았다.
소문만 무성했을 뿐 둘 사이는 아주 건전했으니까.
동갑이라는 걸 알고 난 후 원우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졌다.
몇 번 만나면서도 순영이 그에게 손을 댄 적도 없었을 뿐더러 깊게 원우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다.
제 과거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순영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집창촌 관리하는 놈이니 과거정도는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만 상관 없었다.
"라면 끓여놨어?"
"야 불겠다 빨리와"
정오가 되자 부은 눈을 한 순영이 칠성슈퍼로 들어가 의자를 차지했다.
쉬어터진 김치에 차가운 밥, 그리고 라면이 다였지만 순영의 입꼬리가 위를 향했다.
"야, 맛있다 맛있어"
"왜 이렇게 늦었어"
"원우 보러 오는데 또 오빠가 세수는 하고 와야지"
장난스레 하얀 뺨을 쿡 찌르자 원우의 귀가 다시 붉어졌다.
그것이 귀여워 순영은 입 안 가득 라면을 밀어넣고선 푸흣, 웃는다.
"아 배불러"
"너가 설거지 하고 가"
"아 그거야 당연하지"
구들장이 다 타버려 시꺼멓게 된 장판 위로 몸을 대자로 뻗어 누은 순영이 나른한 표정으로 원우를 보고는 제 옆자리를 탕탕 쳐본다.
제 옆으로 오라는 뜻이다.
"아 징그러워"
"뭐 어때 오빠가 팔베개 해줄게"
마른 몸을 끌어안듯이 제 옆에 눕히자 간지러운지 원우가 까르르하는 소리를 내며 자지러진다.
제 품에 안겨들어온 가는 허리와 제 입술 가까이에 닿은 얼굴에 순영의 마음이 동했다.
원우 역시 이상한 흐름을 감지한건지 웃음기를 지우고 순영을 빤히 바라보다 시선을 돌린다.
"원우야"
"나 일어날래"
"나 봐"
턱을 잡아 시선을 마주하자 원우의 시선이 갈곳을 잃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했다.
그 모습 조차 귀여워 순영은 저도 모르게 귀엽다는 말을 내뱉는다.
"너 진짜 귀여워"
"아 그 말 하지마. 서른 넘은 아저씨가 뭐가 귀여워"
"진짠데"
이마를 아프지 않게 콩 박아 시선을 마주하며 슬며시 안경을 벗겨내자 원우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입술을 조심스레 대고는 슬쩍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넣었다.
덜덜 떨리는 입 안이 고스란히 느껴져 순영은 슬쩍 웃는다. 그러자 왜 웃느냐는 듯 아프지 않게 원우가 등판을 콩하고 치는 것이다.
"진짜, 전원우 너 존나 귀엽다"
"흐으, 뭐야 너"
짧은 키스에도 세차게 뛰는 가슴에 원우가 억울한 표정으로 순영을 올려다본다.
헝클어진 머리에 상기된 두 뺨조차 귀여워보여 순영은 원우의 입술을 엄지로 살짝 훔쳐준다.
"키스해도 돼?"
"그런거 묻지마"
뾰루퉁한 표정을 한 전원우가 앙큼하게도 눈을 감는다.
귀엽고 예뻐 순영은 양 뺨을 감싸 다시 입을 맞추었다.
6.
순영의 휴대폰엔 부재중 통화가 3건이 떠올랐다.
일이 해결이 되었으니 서울로 오라는 승철의 전화였다.
+ 귀여움과 거리가 먼 구질구질한 곳에서 만난 영원이들...
서울에서 잘나가던 권실장님이 지방 항구도시 집창촌 관리자가 되어서..
거기서 구질거리면서 사는 칠성슈퍼 주인 너누랑.. 이제 막 행복하려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부르고... 또...뭐 이딴 귀여움과 거리가 먼 주제에서 전원우의 귀여움을 찾고 싶었습니다
첫 전력 참가라 그런지 아무말러처럼 글을 휘갈겼으나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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